산수유 꽃이 피는 날

산수유 꽃이 피는 날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노란 불씨를 밝히는 꽃, 산수유.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옷깃을 스치는 날에도 산수유는 망설이지 않는다. 얼었던 가지 끝에서 조그마한 꽃망울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이내 터지듯 노란 꽃잎을 펼친다. 마치 봄을 먼저 맞이한 전령처럼, 산수유는 길고 긴 겨울을 지나온 이들에게 희망을 속삭인다.

나무마다 매달린 꽃봉오리는 작은 햇살을 머금은 듯하다. 따스한 빛을 품고 피어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온 세상이 노란 물결로 출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먼발치에서 보면 한 송이 한 송이는 작디작지만, 모여 있으면 그렇게도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산수유를 보러 간다. 이 꽃을 보면 어김없이 오래전 어느 봄날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으며 처음 본 산수유나무. 할머니는 노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산수유꽃이란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어 사람들에게 봄이 왔다고 알려주지."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이 신기했다. 마치 꽃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나는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면 '봄이 오는구나' 하고 먼저 깨닫게 되었다. 그 느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산수유는 화려한 벚꽃처럼 한순간에 피어나지 않는다. 매화처럼 단아한 자태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때를 기다려, 가장 먼저 봄을 피워내는 꽃이다. 긴 겨울을 버텨낸 나무가 맺어낸 작은 황금빛 꽃들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기다림 끝에 꽃이 핀다. 인내한 만큼 봄은 더 따뜻할 것이다."

꽃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우리 인생도 이와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때로는 겨울 같은 시간을 지나야 하고,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반드시 피어나는 순간이 온다. 산수유가 그러하듯, 우리 삶도 그렇게 다시 꽃을 피운다.

봄날의 자목련  꽃 이야기

나는 오늘도 노랗게 핀 산수유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느냐" 하고. 혹여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괜찮다. 이 산수유꽃처럼 언젠가 내 삶에도 따스한 봄이 찾아올 테니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산수유꽃을 보며 다시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