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들려주는 따뜻한 옛 마을 이야기
겨울의 끝자락, 청명한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장승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마을 어귀에 서서 오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품고 있는 듯했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장승의 깊은 주름을 비출 때면, 그 속에 스며든 세월의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우리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장승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1. 장승은 단순한 나무 기둥이 아닙니다
많은 분이 장승을 그저 길가에 세워진 조형물로 생각하시곤 하죠. 하지만 실제로 마주해본 장승은 그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마을의 수호신: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했습니다.
친절한 안내자: 길목마다 서서 길손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죠.
민초들의 벗: 때로는 위엄 있는 장군처럼, 때로는 익살스러운 이웃집 아저씨처럼 우리 곁을 지켰습니다.
옛 선조들은 장승을 세우며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빌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미신이라기보다, 서로를 지키고자 했던 공동체의 따뜻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2.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 속에 담긴 조화
사진 속 장승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셨나요? 거친 나무 결을 따라 새겨진 얼굴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어떤 장승은 호통을 치는 듯 엄격해 보이고, 또 어떤 장승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죠.
특히 몸통에 새겨진 **‘天下大將軍(천하대장군)’**과 **‘地下女將軍(지하여장군)’**이라는 글자가 눈에 띕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마을이 평온할 수 있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상징해요. 음과 양의 조화, 그 속에 깃든 균형의 미학이 참 아름답지 않나요?
3.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과거의 장승은 마을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농부들은 풍년을 기원했고,
먼 길 떠나는 이는 무사 귀환을 빌었으며,
혼례를 앞둔 청춘들은 백년해로를 약속하던 곳이었죠.
하지만 현대화의 물결 속에 콘크리트 도로가 생겨나며, 마을 어귀를 지키던 장승들은 이제 민속촌이나 관광지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어쩌면 우리 마음 한구석의 여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장승처럼 살아간다는 것
장승 앞에 서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의 표면을 만져보았습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묘한 온기가 느껴지더군요. 나무는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그 주름 하나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고 비바람을 견뎌낸 훈장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장승처럼 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고, 지친 이들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는 존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는 삶 말이죠. 장승 앞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자, 햇살을 받은 장승이 저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언제든 다시 오렴. 나는 늘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작은 장승 하나를 세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스스로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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