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Ads

담쟁이가 들려주는 계절의 이야기

담쟁이가 들려주는 계절의 이야기



담쟁이는 벽을 타고 오르며 계절을 기억한다. 봄이면 연둣빛 새순을 피워 올리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벽을 감싸며 생명의 힘을 뽐낸다. 가을이 오면 노란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며 계절의 깊이를 더하고, 겨울이 되면 마른 가지를 남긴 채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신리 성지 성당의 벽을 감싼 이 담쟁이 역시 계절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 벽 위의 담쟁이는 가을과 겨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푸르렀던 잎들이 곳곳에서 갈색과 붉은빛을 띠며 서서히 말라간다. 어떤 잎은 아직도 푸른빛을 머금고 있지만, 그것조차 금세 변해갈 것임을 안다. 바람이 불면 말라버린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벽에는 담쟁이가 지나온 자국만이 남는다. 가지들이 만들어낸 실핏줄 같은 흔적이 마치 오래된 필사본의 글씨처럼 벽돌 위에 남아 있다.


그러나 담쟁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와도 그 뿌리는 남아 있으며, 가지들은 단단히 벽을 붙들고 있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추위가 아무리 깊어도, 담쟁이는 다음 봄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신리 성지 성당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신앙의 숨결을 간직해온 것처럼, 이 담쟁이도 한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푸르렀던 것이 시들고, 화려했던 것이 소박해지는 순간을 마주하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담쟁이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변화는 곧 이어질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라고. 한 계절을 지나야 또 다른 계절이 오듯이, 오늘의 시듦은 내일의 싹틈을 위한 준비일 뿐이라고.


신리 성지 성당 벽을 감싼 이 담쟁이를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지금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푸르름이 절정에 오른 여름인가,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는 가을인가, 혹은 조용한 침잠의 겨울인가. 그리고 어떤 계절이든, 결국 봄은 다시 올 것임을 담쟁이처럼 믿어보려 한다.


신리성지 십자가의 길 도 보고 가세요


Powered by Blogger.